NOTICE 

작년 초 쯤이었을까. 처음으로 공부 한번 해보겠다고 날뛰긴 하는데 잡다한 책이나 대충 기웃거려봤지, 23년 동안 공부란 걸 제대로 해본 기억은 없으니 열심히 한다한들 성적은 안 나오는 상황에다가 그 나이에 가질만한 꽤나 ‘대중적’인 고민인 ‘불투명한 미래’에 잠을 뒤척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공부 좀 해보겠다고 호기 어린 절주 선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친구들과의 소통도 단절된 상황에서의 고민들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그 때에 비하면 별로 나아진 것 없는 지금이 다소 안정적인 기분마저 드니 적어도 내 24년 인생 중에 최악의 순간을 맞던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심지어 하루에 한 마디도 뱉지 않은 날도 빈번했고 온라인에서 이것저것 필사적으로 소통을 하려 들었을 정도였으니 그 고립감은 텍스트로 이루 다 표현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잡다한 고민의 끝에 놓여있었고 그 고민들에 대한 접근은 다소 진지함을 요했다. 그래서 나는 연예 가쉽거리에 대한 소통을 거부하고 친구들은 내 시사적이고 다소 관념적인 고민에 대한 소통을 거부하니 그런 단절에 따른 우울함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런 수많은 고민들이 뒤엉켜 머리 속을 휘젓던 우울한 시기에 문뜩 떠오른 의문 중 하나는 ‘왜 우리 세대가 이리도 적성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 라는 점이었다. 사실 그 의문의 출발은 내가 대중적인 코드를 섞어가며 그들이 ‘꼰대스럽다‘고 느끼는 시사적인 소통을 시도하려 들어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논리로 ‘진중함’을 거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각종 칼럼에서 '무식한 대학생‘이라며 거침없이 ’까이고‘, 20대의 ’먹고사니즘‘이나 ’보수화‘라는 말이 오르내릴 정도로 당최 대다수 목적의식은 하나의 단순한 경제 논리에 묶이는 시대가 되어간다. 의문의 해답으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우선 경제 논리만 놓고 따져보자면 생각 외로 간단한 요인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IMF가 던져놓은 기형적인 경제 인식에 따른 시대적 조류다.

IMF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을 거다. 그 당시에 경제란 걸 배워본 적도 없는 난 뉴스나 부모님 입에서 떠나갈 듯한 한숨과 짜증 섞인 말들에 자주 나오니 당시 그 말이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와 경제적 상황은 바로 그 당시 청소년들의 꿈과 자연스레 연관될 수 밖에 없다. 우선은 ‘먹고 사는데 치중하자’ 식의 생각이 1순위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나와 내 친구들이 한창 교육 받을 시기에 슬픈 트랜드였다. 우선은 ‘먹고 살기’ 바로 그것을 위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도 입을 모아 "무슨 과가 나중에 취직 잘된다더라." 식의 경제형 조언만 늘어놓았고, 국문과 지원한다고 하면 “너 미쳤어?” 라는 답변에 현실은 모르고 꿈만 쫓는 ‘머저리 이상주의자 취급’이었으며, 경영학과 지원한다고 하면 현실과 타협하고 트렌드를 아는 ‘미래준비형 대접’이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걸 보면 당시의 편향된 인식 변화폭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도 얼마나 학생들에게 그러한 ‘과도한 현실주의’가 강요되는지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자기 적성을 찾기보다는 취업이 우선 잘되는 과를 찾게 되고, 무턱대고 들어간 후에야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깨달은 학생은 괴리에 봉착하는 현실. 시간에 흘러도 IMF라는 시대적 상황이 그 세태에 미친 영향력은 줄어들 기세조차 보이질 않는다. 별 다른 조치가 없다면 그 괴리감은 죽을 때까지 꼬리처럼 들러붙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꿈에 관한 당위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적성을 찾지 못한 이들은 취업하더라도 금세 그 일에 흥미를 잃고 루즈해지며, 결국 작업 능률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결국 직업에 있어 본질적인 목적은 사라지고 마치 게임처럼 눈 앞에 자잘한 ‘퀘스트’에 급급하기 마련이다. 승진, 연봉, 그 외 다소 물질적인 것과 같은 눈 앞의 목적은 그 목적보다 더 높은 상위 개념의 진짜 본질에 대한 접근성은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친구 녀석에게 ‘난 오로지 돈이 목적이야.’ 라는 말을 들었는데, 다소 이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눈 앞에 놓인 돈이 목적인 건 좋다. 그런데 그 다음은? 멋진 집 사고 차 사고 여행 가고. 그래, 그러면 그 다음은? 돈이 본질적인 목적으로 자리 잡는 순간 피상적인 접근이 시작된다. ‘이 세상의 돈이 전부가 아니란다, 친구.’ 같은 상투적인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결코 돈은 수단이 되어야지, 돈 자체가 본질적인 목적이 된다면 그 삶은 매순간 치열하되 단조로워질 수 밖에 없다. 주호민 작가의 <무한동력>에서 먹고 살기 위해 취업한다는 주인공의 말에 하숙집 아저씨는 이렇게 묻는다.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아저씨는 그 20대 청년에게 밥을 쫓는 건 좋으나 ‘그것만’ 목적이 되었을 때 삶의 끝자락에서 느낄 무기력함을 걱정하는 것이다.

적성을 찾지 못하는 건 결국 목적의식의 부재로 이어지고 그건 곧 프로페셔널리즘 부재로 이어진다. 자기 적성을 찾고 그 일에 흥미를 느끼며 노력해야 도달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리즘은 애초에 그 시작부터 꼬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직업의식의 하락을 낳고 ‘먹고사니즘’과 적당히 타협한 사람들의 일처리는 적당량 대충 떼우기에 급급할 것만 같은데, 개인의 문제를 떠나 이게 다소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 문제에 기인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을 넘어서 이제 ‘영혼 없는 직업인’의 양산을 우려해야할 지경이니 말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이 사회의 통념은 우리에게 귀하고 천한 직업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확실히 하자. 자신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직업의 귀천과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 가지 예로 청량리에서 오뎅 파시는 아주머니가 생각나는데, 그곳이 아니더라도 오뎅 파는 곳은 많고 다른 곳과 비교해봐도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곳만 찾는 이유는 바로 아주머니의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수차례 그곳에 가봤지만 단 한 번도 손님을 대할 때 웃지 않은 적이 없고, 사람이 너무 많아 먹을 자리가 애매할 때 눈치 채고 먼저 손님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등의 다양한 센스. 얼굴은 또 얼마나 빨리 익히시는지 3번짼가부터 먼저 아는 체 해주시는 친절함을 발휘하시고 오랜만에 가더라도 꼭 ‘오랜만에 오셨네’ 라면서 응대해주신다. 모든 게 다소 장사 속 일지언정 그것을 과하게 들어내지 않는 점에서 아주머니는 명백히 프로다. 사회적 통념에 비춰봤을 때 ‘사’자 들어가는, 혹은 대기업 사원이라는 직업에 비하면 초라할지 모르지만 아주머니는 그 직업 속에서 온전한 빛을 낸다. 그게 정확한 프로페셔널리즘이기에 난 항상 그곳을 찾을 때마다 그깟(?) 700원짜리 오뎅을 집어먹으면서 가벼운 걱정과 함께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내가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프로페셔널할 수 있을까.’ 라며.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그만큼 자신의 적성부터 찾은 후 진학해서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마인드가 중요한데, 현재의 20대 뿐만 아니라 시대적 조류는 적성을 찾아주는 일보다 단순한 무한경쟁시대에 학생들을 던져놓는다. 앞으로도 시행될 일제고사는 물론, ‘대학’을 두고 경쟁했던 때와는 달리 그 앞에 ‘특목고’부터 두고 경쟁해야하는 지금의 상황은 점점 더 하면 더 했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공부를 즐긴다고 해서 공부가 쉬워지고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펜을 쥐고 있으면서도 머리 속엔 자꾸 물음표를 떠올리게 되면 결국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본인에게 가장 본질적인 목적을 찾지 못하거나 눈 앞에 목적만 쫓는다면 시기 상의 문제지, 언젠가 가장 혐오스러운 물음표에 잠식당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쁘장한 말이 꿈이지, 꿈이란 걸 떠올릴 때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는 길이 보이고, 결국 적성이라는 놈의 발견은 스스로를 더 이상 슬프게 하지 않을 방법 중에 하나가 될 터인데, 세상은 단순히 ‘꿈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라 지칭하려 든다. 타협은 적성을 찾은 후의 일이다. 타협부터 서둘렀다면 꿈을 재정립해볼 필요가 있고, 시대적 조류를 따라가는데 급급해 타협조차 해본 기억이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바로 자신의 적성을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본인이나 세상을 위해서 꿈을 가지는 것에 관한 가장 최우선의 당위성이라고 본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것이 본인의 결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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