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 강연회에 다녀왔다. 강연회 자체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정치 관련된 강연회에 가본 건 처음인지라 이래저래 살짝 긴장한 것도 사실이나 생각외로 편한 자리여서 난잡스러운 불안감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사정상 강연이 1시간 정도 지연됐지만 강연 내용은 기다림을 보상하듯 무척 만족스러웠다. 몇가지 짤막하게 메모한 게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썰을 풀어볼까 한다.
강연 내용 전부를 얘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에 대해서다. 우선 심대표가 프랑스에 갔을 때의 이야기인데, 마침 어떤 시위가 한창이었다고 한다. 시위는 상당히 격렬했는데 주위 가게 창문들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이야기만으로도 이루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 우파에서 ‘최초 고용해고법’을 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기업에서 노동인력을 고용하고 최초 2년 동안은 기업이 해고권을 갖는 법인 셈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반발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법안이 나온다면 당연히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기 마련일 것이다. 다만 차이점은 극렬하게 갈리는데 그 차이점을 본 심대표는 너무 슬펐다고 했다. 그 차이점이란 바로 프랑스에서는 그런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20대, 즉 대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 그리고 고등학생과 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민주노총 같은 단체는 그 뒤를 따르는 모양새. 바로 그 점이 정확하고 확연한 차이점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20대는 무관심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식의 부재며 자신은 비정규직과 관련이 없을거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심대표는 이 점을 인식의 차이라고 설명했는데 프랑스인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란 양질의 직업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일 뿐, 기업의 권리를 우선에 놓는 우리완 사뭇 다르다.
여기서 잠깐 20대의 정치 인식 부재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 우선 20대가 왜 시사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진단해볼 필요성이 있다. 몇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시사나 정치에 무관심한 20대의 십중팔구는 '정치가 더러워서, 걔네들 맨날 싸워서 싫다. 그래서 난 차라리 무관심하겠다.' 이런 논린데, 말 그대로 인식의 부재다. 정치가 자신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비정규직이 남의 나라 얘긴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면, 그럼 다른 이들의 얘긴가. 정신차려라. 비정규직에 고생하는 건 곧 내 얘기고 내 얘기가 아니더라도 내 친구의 이야기며 고로 20대의 이야기다. KTX, 이랜드, 기륭전자 등등, 남 얘기 같나? 우리 얘기다. 정작 내야할 목소리는 가슴 한구석에 쳐박아두고 떨어지는 주식을 보면서 목청 높여 비명 지르고 있다. 그게 현 20대의 현실이다.
심대표 왈, 인식의 차이는 곧 교육에서 갈린다고 했다. 유럽의 교육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우선시해서 교육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벌써 ‘노동’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묘한 거부감에 사로잡힌다. 이런 의식의 변화를 위한 교육이 곧 진보정치 실현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현재의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물질 만능주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가 없이는 아무리 힘껏 MB와 MB 정책을 비판한들 진보정치는 회의적이라는 게 심대표의 설명이었다. 말인즉슨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날을 세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교육과 의식 변화의 필요성이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나 이번 대선에 대한 시각은 비슷비슷하다. MB의 압도적인 득표는 곧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대표 + 지지표라는 점인데 심대표는 그 반대표를 종이로 만든 돌덩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곧 MB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노무현에게 돌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니 현 정권이 지지 기반이 허약할 수밖에. 그들의 지지표는 대선 당시 압도적인 득표에 비하면 적은 편에 속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삽질을 하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당 지지율이 올라야 되는데 정치부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야당이란 대항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에서 해놓은 일들은 보면 ‘니들은 뭐 잘했다고 그래?’ 소리 안 나오긴 힘드니까.
민노당과의 분당 얘기도 잠깐 언급됐다. 내가 예전 글에서 NL과 PD노선을 설명하며 민노당에서 분당되어 진보신당이 창당된 이유로 설명했는데 심대표는 일단 그 문제를 떠나 그들의 대표성에 있었다고 했다. 민노당은 지난 대선 당시 3%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곧 국민들이 이들을 진보의 대표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고, 다년간의 노동 운동과 지지 기반이 있었던 민노당이 이제 첫 발을 내딛은 문국현의 창조한국당보다도 지지 받지 못했다는 점은 그들의 대표성이 얼마나 희미했는가를 의미했다. 고로 심대표는 책임있는 대안 세력의 필요성을 분당의 이유로 꼽았다.
마지막에 살짝 정리 멘트하시고 강연이 끝났는데 ‘진보신당은 앞으로 어떤 대표성을 띌 생각인가?’ 라는 질문에 청소년, 여성, 비정규직을 대표하려 한다는 대답에 덧붙여 각 당의 대표성에 대한 얘기가 살짝 언급됐는데 나 또한 심대표의 생각과 비슷하다. 우선 민주당이 가장 모호하다. 계층의 대표성 자체도 희미하고, 좌는 없고 우만 득실대는데 중립이 대체 어떤 의미로 나타날까. 계층의 대표성 자체는 뚜렷한 민노당의 문제점으로 심대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점을 꼽았다. 사실 이 점은 민노당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반면 한나라당의 대표성은 아주 뚜렷하다. 기득권 계층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고 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고 있다.
1시간의 짧은 강연이었지만 자신이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할 줄 아는 스피치 능력의 심대표가 부러웠다. 내가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극소수로 대변되는 한국 진보 세력이기에, 한국 정치의 균형적 측면이라는 점이 크지만 이런 뚜렷한 신념의 소유자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는데 이들을 어찌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앞으로도 심상정과 진보신당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진보정치 세력의 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