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위기의 지구’를 보고 싶다면 영화처럼 굳이 재난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인류가 지배하는 현 모습이 곧 재난이며 위기 그 자체니까. 영상 말미의 말처럼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압축하면 인류가 지배한 건 고작 30초가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짧은순간에 우린 수많은 재앙을 야기하고 덕분에 다양한 예측들로 멸망을 생각한다. ‘인류 멸망 그 후 (life after people)’ 라고 쓰고 ‘생태계 복원’이라고 읽으면 간단하다.
무엇이든 할 것 같은 인류가 얼마나 허술한 방식으로 자연을 지배해왔는가. 사람의 관리가 사라지고, 갈라진 틈에 내린 뿌리는 건물을 붕괴시킨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빌딩 외벽에는 줄기가 타고 올라간다. 도로도 금세 풀로 뒤덮이고 나무가 자라난다. 동물의 개체 수는 늘어나고 도시는 본연의 자연의 모습을 갖춰간다. 이 정도가 인류 멸망 20년 후의 이야기다.
다큐는 이런 가정들을 현존하는 지역을 통해 증명하는데, 바로 체르노빌 인근지역 프리피야트이다. 핵 참사로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이 지역은 20년 이상 유령 도시로 남겨졌다. 그 이후 건물 주위엔 풀이 우거지고 축구장 한가운데에는 숲이 생겼다. 개체 수가 부족한 동물들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서식한다. 놀랍지 않은가, 자연의 복원력이. DMZ 생태계가 주는 그 경이로움, 그것과 비슷하다.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포획량을 조절하고 자연을 위한다지만 개체 수가 감소하는 일 따위도 결국 인간이 야기한 짓 아닌가. 단지 20년 정도 인간이 없었을 뿐인데 자연은 자신들의 영역을 되찾고 있다. 결국 인간이 없으면 될 일이다.
축구장은 숲이 되어버렸다
다큐는 다시 순차적으로 기록한다.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다리가 무너지고 저지대인 지역은 물에 잠기기도 한다. 식물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듯 석재는 염분 때문에, 목재는 흰개미에 부식된다. 차례로 많은 건물들이 종말을 맞는다. 100년 이후엔 책과 CD/DVD 등의 저장매체들이 사라진다. 최첨단을 자랑하는 현 인류의 기술이 석판보다도 빠르게 소멸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150년 이후, 착취가 사라진 덕분에 바다 생태계가 복구된다. 바다 입장에선 인류의 멸망이 곧 축복이다. 다큐는 차례로 10000년 후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CG로 재연되는 그 과정은 문명 붕괴와 자연 복원의 연속이다.
백만 스물 하나보다 오래 가는 석판
다리가 무너지고
빌딩도 무너지고
에펠탑도 무너진다
난 좀 더 살고 싶고 염세주의자는 아닌 관계로 인류가 사라지길 빌고 싶진 않다. 어차피 자연과 공존할 거라면 좀 더 우아하게 할 순 없을까. 이 땅에 정말 살아 숨 쉬는 건 인류가 만든 그 무엇이 아니라 자연이다. 우아하게 공존하는 게 뭐 쉽겠냐만 최소한 ‘인류가 만든 그 무엇’ 때문에 삽질 좀 그만 하자. 주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