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군은 애초에 ‘선체 절단면 공개 불가’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유인즉슨 현 시점에서 절단면이 공개되면 억측과 의혹들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비난 여론이 심해지자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쯤에서 한번 여쭙고 싶다.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기존 언론이나 인터넷이 깨끗했던가? 지금까지 한껏 존재해왔던 것들은 억측과 의혹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이분들 전공인 ‘은폐’, ‘엄폐’ 덕분에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물고 덕분에 억측들이 돌고 돌아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던가? 나 같이 이 문제에 무지한 중생을 위해 순기능을 해줘야 할 언론은 속보성에 초점을 맞춘 불확실한 정보들을 버젓이 유통하고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는 그따위 정보들로 대중을 호도하기까지 한다. 오히려 웹상에 정제된 가설들이 더 근거가 뚜렷하고 논리가 분명하다. 오히려 기존 미디어가 주는 불투명한 정보들에 국민들이 ‘피로 파괴’할 지경이다. 지켜보는 국민들도 이 지경인데 실종자 가족들은 어떻겠는가. 이런 와중에 선체 절단면조차 공개하지 않겠다, 혹은 결정된 바 없다는 군의 태도는 아직도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현 상황이 이리되었는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어 보인다.  현 상황에서 저런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혼란을 정리할 의지 자체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7일 생존 장병의 공개 진술과 사건 발생시간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우려가 앞서는 건 군의 저런 태도 덕분이다.

알려진 정보가 너무도 없으니 나도 추측 한 번 해보자. 이번 사건에 대해 정부와 군 당국의 자세를 보며 느끼는 건 이분들의 ‘위기 대처’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위기 대처란 신속히 대응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인데, 현장에 대한 위기 대처가 아니라 본인들 위기 대처를 위해 늦장 대응으로 시간을 벌면서 모든 정보를 은폐, 엄폐하는 걸 보니 사건 자체를 축소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을 위기 대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해군에서 며칠 고급 장비들을 가지고 수색했는데도 찾지 못한 천안함 선미를 민간 배가 금세 찾아낸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어부 아저씨 눈치가 너무 없었나 보다. 이분들 질질 끌면서 벌어놓은 시간으로 골머리 썩히고 있는데 ‘감히’ 벌써 발견해버리다니. 훌륭한 일은 해군이 아니라 이분이 하셨지만 해군 입장에선 '성질 급한 놈', ‘이런 배려 없는 놈’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각하께서는 해군의 초동 대응이 훌륭했다고 치하하셨다. 일반 대다수의 국민들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정부로서는 훌륭하다고 느낄 만도 하다. 현재까지 보여준 정부와 해군의 ‘위기 대처’란 사건의 모든 정보를 은폐하고 축소하여 ‘애매모호함’으로 끌고 가려는 태도로 보인다. 굼뜬 초동 대응이야말로 애매모호한 포지션을 위해선 안성맞춤이니 말이다. 국회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이 ‘C’자형 절단면을 근거로 어뢰 가능성을 언급하며 ‘북한공격설’에 무게를 두고 있을 때, 급하게 전달된 청와대의 'VIP 메모'는 그의 답변을 ‘애매모호하게’ 바꿔놓았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받은 VIP 메모 전문

장관님! VIP께서 외교안보수석(국방비서관)을 통해 답변이 ‘어뢰’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고 하면서(기자들도 그런 식으로 기사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여당 의원 질문 형식으로든 아니면 직접 말씀하시든 간에 “안 보이는 것 2척”과 “이번 사태”와의 연관성 문제에 대해

① 지금까지의 기존 입장인 침몰 초계함을 건져봐야 알 수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고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시고 ② 또한 보이지 않은 2척은 식별 안 되었다는 뜻이고 현재 조사 중에 있으며 그 연관관계는…직접적 증거나 단서가…달라고 하십니다.
   (끊어지는 부분은 가려져서 안 보이는 부분)


이 메모를 받은 이후 김태영 국방장관은 발언 수위를 낮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VIP는 대통령을 뜻하는 은어라고는 하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메모가 아니라 단순히 실무진을 통한 의견 전달이라고 해명했다. 누가 보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메모 한 장이 발언 수위를 조절했고 한 나라의 국방장관을 쥐락펴락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애매모호한 포지션을 취하려 할까? 진쌤 블로그에 정리된 글이 있어 링크 건다.




보수 정권의 주된 가치 중 하나는 안보다. 이념을 떠나 분단국가의 공통된 가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비교적 국방력 강화에 무게를 두는 건 아무래도 과거 두 정권보다는 북한과 대립각을 세우려 드는 현 정권이다. 최근 주요하게 대립하는 두 가설은 아무래도 침수설과 북한공격설(어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안보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두 가지 원인 모두 정부 입장에선 마이너스다. 침수설이라고 한다면 해군력에 문제가 있었으니 관리 소홀이고, 북한공격설이라면 북방한계선을 침범당한 셈이니 두 요인 모두 안보를 위협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걸핏하면 핏대 세우고 안보를 부르짖었는데 어느 쪽이든 안보적 재난임이 명백해진다. 그러니 꽤나 우스운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좋은 말로’ 신중한, ‘나쁜 말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지켜왔다. 하나의 요인으로 편향된 모습을 보이다가 만에 하나 사고 원인이 뒤집힐 경우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타격이 두려워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꽤나 적절한 태도임은 틀림없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는 발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를 상실했고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간혹 일각에서는 정부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정부가 얻는 득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의 득을 취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정부 입장에선 사건 발생 요인이 해군의 내부 요인이라면 해군을, 외부 요인이라면 이 사건 자체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방선거 앞두고 왜 시험에 들게 하냐면서.

용산참사 수사기록의 일부를 공개하지 않을 때도 검찰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국민의 눈과 귀를 닫았다. '보안'을 이유로 모든 정보를 틀어막는 현 상황과 뭐가 그리 다를까. 이런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답변들은 이분이 취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만 들게 한다. 개인을 보호하는 '인권'과 국가의 안보를 결정짓는 '보안'의 가치가 이 정부 들어 유독 자주 변질되는 느낌이다. 귀중한 가치가 하루아침에 은폐를 위한 은폐, 허울 좋은 말들로 전락해 버린다. 지금 필요한 건 ‘나도 물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 이나 ‘(마음 같아선) 아낌없이 (잠수부) 전 인원을 물에 처박아 넣어가지고 (구조를) 하고 싶다.' 따위의 말들이 아니라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걸러내서 국민들과 실종자 가족들 앞에 내놓는 것이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따위는 좀 적당히 하자.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짐했던 그 젊은이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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