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잔을 든다. 각자 바빠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썰들을 풀어내며 잔을 문댄다. 청명한 소리 끝에 미묘하게 흔들리는 술처럼 내 눈도 멍한 곳에 초점을 두고 흔들린다. 취업이 고민이야, 토익 준비해, 휴학이나 할까봐, 일 그만두려고,라며 불안감에 익숙하지 못한 웃음들을 엷게 띠고 남들 모르게 입 안 속살을 질끈 짓누른다. 우린 노예 같다고 웃으며 자학하고, 예쁜 여자연예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스치듯 흘러가는 하릴없는 웃음임을 알면서 적어도 이 순간은 맘껏 어울리고 싶은 듯 꺽꺽 웃어댄다.
나는 몰랐다. 너의 부모님이 편찮은지도, 너의 집안이 어려운지도, 얼마나 복잡했는지, 너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무관심했다. 아니, 무관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너나 나나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시간들을 외면할 수 있는 만남 속에서 다시금 우리의 실체를 곱씹고 끌어내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순간을 벗어날 수 기쁨 속에서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시들어가는 존재여야만 했다.
가끔 너에게 너의 청춘을 돌보지 않는다며 투정하듯 질책도 해보았지만 너라고 왜 꿈이 없겠는가. 선망하던 꿈보다 어머니의 두 눈을 더 많이 떠올렸던 탓이겠지. 사회가 토해낸 병폐 속에서 검은 숨을 헐떡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에게 더 무슨 사슬을 채우겠나. 탓하지 않으련다.
우리의 시간이 종점에 당도하면 우린 그렇게 또 손을 뒤흔든다. 혼란스러움을 뒤로 한 채 흔들리는 손처럼 휘청거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려 노력한다. 좀 더 함께 하고 싶지만 오늘도 예전처럼 격한 포옹이나 악수를 청하고 손을 흔든다. 맞잡은 두 손만큼이나 가슴은 뜨겁지만 이제 식어버린 손은 바람에 이끌려 휘청거린다. 난 묻고 싶었다. 그래 그 청춘, 더 열심히 쟁취하고 사랑할 수 있겠냐고. 쏟아져 파묻히는 네온사인의 촉 속에서 우리의 청춘들은 하나 둘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다. 언젠가 노을이 지고 진한 붉은빛이 쏟아지는 날, 그 무렵엔 희미한 답이나마 들을 수 있을까.